art-flow 님의 블로그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공간. 당신의 하루에 작은 울림을 전하는 [문화 예술] 이야기로 초대합니다.

  • 2025. 4. 17.

    by. art-flow

    목차

      1. 국악 속에 숨은 드라마

      “국악 속에 숨은 드라마”라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한국 전통음악, 특히 판소리, 정가, 산조, 시나위에는 고유한 멜로디 안에 서사적 구조가 깊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국악은 그저 ‘소리의 유산’이 아니라, ‘이야기를 품은 음악’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전래 설화, 민담, 민속신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국악의 여러 장르는 단순히 정서를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난과 기원, 신과 인간의 서사를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춘향가>는 사랑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계급과 저항, 여성의 주체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심청가>는 단지 효 이야기가 아닌, 죽음과 환생, 희생과 영혼의 구원에 대한 설화적 구조를 지닌 복합적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감상할 때, 국악은 단지 음의 배열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서사극을 읽고 경험하는 것과 같은 감정의 층위를 전달합니다. 즉, 우리가 국악을 ‘이야기처럼’ 듣는다면, 그 안에서 한국인의 정서, 시대의 무의식, 삶의 감정이 선명히 들리기 시작합니다. 지금, 국악은 소리로 듣는 설화이며, 한국 서사미학의 중요한 축입니다.

      2. 작곡가들의 내면 이야기, 음악으로 말하다

      국악 작곡가들은 단지 음을 배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야기를 새롭게 쓰는 자’이며, 전통을 이어받아 자신만의 감정과 시대를 담아내는 해석자이자 창조자입니다. 특히 현대 국악 작곡가들은 한국 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안에 자기만의 내면 서사를 녹여 새로운 음악적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작곡가 안대회는 <바리공주>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 기존의 신비적 서사를 넘어 바리공주가 ‘어머니 없는 딸’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면의 여정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전통 장단을 해체하고 현대적 음향을 혼합해, 신화적 구조 속에 여성의 성장 서사를 입혔습니다. 이처럼 작곡가는 음악을 통해 ‘전통 속의 숨은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말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한 김성국 작곡가는 판소리 <수궁가>를 현대 창작 국악 오페라 형식으로 변주하며, 토끼와 용왕의 이야기를 단순한 민담이 아닌 ‘자연과 권력, 지혜와 생존’의 이중 구조로 해석해내기도 했습니다. 이때 국악기는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기능하며, 장단은 사건의 전개 속도와 감정의 결을 조율하는 도구가 됩니다. 이처럼 작곡가들은 설화를 단순히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정적으로 재해석하고, 자신만의 시대적 맥락 속에서 다시 쓰는 ‘서사 창작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국악이 전통을 넘어서 현대적 감각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중요한 지점이 됩니다.

      3. 한국 전통음악에 담긴 인생의 장면들

      한국 전통음악에는 우리의 삶이 녹아 있습니다. 굿 음악의 반복적 장단은 기원의 리듬이자 애도의 리듬이며, 산조의 흐름은 인간의 생애곡선을 닮았습니다. 장단의 빠르기 변화, 음색의 농담, 시김새 하나에도 인간의 인생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국악은 하나의 긴 생애 서사로 읽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판소리>는 그 자체가 ‘음악이 된 서사’입니다. <흥부가>의 흥보 박 타는 장면에서, 음악은 단지 장단이 아니라 노동의 리듬이고, 희망을 간직한 일상의 분투이며, 그것이 관객에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특히 ‘제비노정기’ 대목에서 제비가 떠나고 돌아오는 여정은, 단순한 신화적 순환이 아니라 인간의 기다림과 믿음을 상징하는 은유적 서사로 기능합니다. <산조>는 연주자의 인생을 반영하는 가장 내밀한 장르입니다. 느린 진양조에서 시작해 점점 빨라지는 장단은 마치 인생의 유년기부터 절정, 노년을 거쳐 사라지는 시간의 흐름을 닮았습니다. 이 장단 위에 얹힌 가락은 인생에서 만난 고비와 환희를 반추하는 ‘소리의 자서전’과도 같습니다. 또한 농악이나 풍물은 공동체의 삶을 중심에 둡니다. 그것은 함께 리듬을 맞추며 노동하고 기원하고 흥겨움을 나누는 ‘공동의 서사적 공간’입니다. 이처럼 국악은 우리의 감정, 리듬, 서사를 모두 내포한 ‘소리의 연극’이며, 각각의 음악이 우리의 삶 한 장면을 대변하는 ‘음향적 인생 이야기’로 작동합니다.

      4.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는 스토리의 뉘앙스

      국악은 같은 악보, 같은 장단을 기반으로 연주되더라도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로 들립니다. 이는 국악이 단지 ‘기보 된 음악’이 아닌, 해석과 감정의 순간적 교감으로 이루어지는 ‘살아 있는 서사’이기 때문입니다. 국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시김새, 즉 음을 살짝 눌렀다 풀거나 흔드는 방식은 연주자의 개성과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같은 곡도 전혀 다른 감정의 이야기로 재해석됩니다. 예를 들어, 거문고 산조를 연주할 때 정대석 명인의 연주는 절제된 서사 속 깊은 사색의 정서를 드러내는 반면, 젊은 연주자 정우진은 동세대적 감각으로 더욱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시도합니다. 청중은 이 두 연주를 들으며 동일한 곡 안에서 전혀 다른 감정의 흐름과 내면의 움직임을 체험하게 됩니다. 판소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춘향가>를 부를 때, 송순섭 명창은 정통적 호흡과 긴장감 있는 장단 운용으로 고전적 비극미를 강조하지만, 안이호 소리꾼은 재기 발랄하고 연극적인 어법으로 청중과의 실시간 교감을 유도하며 판소리의 스토리텔링을 대중화합니다. 이는 마치 같은 고전을 서로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연극처럼, 해석의 폭과 감정의 방향에 따라 스토리 자체가 재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국악은 연주자가 ‘스토리의 전달자’가 아닌 ‘스토리의 재창작자’로 기능하며, 연주자 개인의 삶, 감정, 시대의 분위기까지 함께 담겨 한 곡 안에 수십 개의 이야기가 공존하게 되는 독특한 예술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국악 감상이 하나의 ‘다중 서사 감상’이자,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쓰는 감정의 이야기임을 의미합니다.

      5. 국악을 이야기처럼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

      현대의 관객은 음악을 귀로만 듣지 않습니다. 감정과 상상력, 기억과 서사적 맥락 속에서 ‘스토리텔링 기반 감상’을 지향하며 음악을 받아들입니다. 국악 역시 이러한 변화에 따라 단순한 청취 대상이 아니라, ‘이야기처럼 감상하는 예술’로 점차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최근 예술가와 기획자들은 국악의 서사적 요소를 해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해설과 시청각 콘텐츠를 결합한 감상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시도 중 하나는 국립국악원이 진행하는 <이야기가 있는 국악콘서트>입니다. 이 공연은 작품의 전통적 배경, 설화 구조, 인물 관계를 먼저 해설한 뒤 음악을 감상하게 함으로써 관객이 음악 안의 서사를 더 깊이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는 관객이 국악을 ‘듣는 것’에서 ‘읽는 것’으로, 더 나아가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따라가는 것’으로 확장하는 감상 방식입니다. 또한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통해 접근 가능한 디지털 공연 콘텐츠에서는 자막, 시각 자료, 공간 연출 등을 통해 음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시도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통 국악을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미디어 아트와 결합하여 서사 구조를 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국악 콘텐츠’는 특히 젊은 세대의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악은 더 이상 ‘알아야만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는 음악’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이러한 감상 방식의 변화는 국악을 감정적이며 정서적인 매체로 재정의하게 합니다. 스토리 기반 감상은 국악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음악과 관객 사이의 정서적 밀도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예술적 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6. 음악 감상이 서사 읽기로 확장될 때

      국악은 오래전부터 우리 삶의 이야기들을 품어왔습니다. 설화와 민담, 신화와 애가, 노동과 기도, 축제와 애도 (all of these moments) 모두 국악이라는 형식 속에 감정과 함께 저장되어 왔습니다. 이 음악을 단지 소리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이야기로 읽기 시작할 때, 우리는 국악의 또 다른 층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서사의 예술로서의 국악입니다. 이야기를 품은 국악은 감정의 진폭을 넓히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역사와 신화를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듭니다. 판소리의 대목마다, 산조의 장단 구조마다, 굿 음악의 리듬마다 담긴 정서와 사연은 단순한 음악적 기교를 넘어서 ‘공감의 예술’로 기능합니다. 특히 연주자와 작곡가, 청중이 모두 스토리의 공동 창작자이자 해석자가 되는 국악의 구조는, 음악 감상이 하나의 ‘이야기 공동체 참여’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국악은 단지 ‘전통의 보존 대상’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감정과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도구’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국악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과 마음, 기억과 상상력으로 읽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국악은, 살아 있는 서사가 되어 우리 삶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