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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로컬, 다시 주목받는 창조의 원천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로컬은 단지 '지역'이라는 지리적 개념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품 생산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고유의 문화, 자연환경, 기술력,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하나로 엮여 콘텐츠화·디자인화되는 현상을 반영합니다. '로컬 브랜딩'이라는 흐름은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취향 기반의 소비’, ‘가치 중심의 기획’이 강조되며 급격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서울이 아닌 속초, 군산, 제주 같은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성장한 브랜드들이 전국 단위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문화 창작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은 그 대표적인 현상이죠. 이제 ‘로컬’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콘텐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감각적인 출발점이자 스토리텔링의 실체적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2. 지역 자원의 디자인화: 토양에서 탄생한 감성 브랜드들
지역 고유의 자원과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전환한 국내 로컬 브랜드 사례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강릉에서 자생하는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 생활용품 브랜드 ‘죽향’은 그 지역 생태를 제품의 정체성으로 삼아, 감각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주도의 ‘헬로제주’는 귤껍질과 화산송이 같은 지역 특산물을 원료로 스킨케어와 향 제품을 만들어, ‘향기 나는 로컬’이라는 키워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각적 디자인 외에도, 음식 콘텐츠 분야에서도 로컬 자원의 감성화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주에서는 조선시대 약초주 제조 방식에서 착안한 ‘모월’ 전통주 브랜드가 전통 발효를 현대적인 패키지 디자인으로 감싸며 전국적 인기를 얻고 있고, 부산에서는 ‘도넛샵 무츠무츠’가 부산 원도심의 클래식한 미감을 반죽과 시각디자인에 구현해 전국 SNS 맛집으로 등극했습니다. 또한 대구의 ‘커피명가’는 지역의 사과를 활용한 사과 스파클링 티를 출시하면서 ‘경북 지역 과수 농가’와의 협업을 통해 음료 개발을 브랜딩 화했습니다. 군산에서는 해방 전후 일제강점기 양과자 문화를 복각한 ‘이성당 옛날빵 프로젝트’가 디자인 리뉴얼과 함께 복고 감성 콘텐츠로 발전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 자원의 문화적 가치를 디자인 언어로 승화시키는 흐름은, 로컬의 감각적 미래를 말해주는 단서가 됩니다.
3. 전통의 재해석: 문화자산을 콘텐츠로 전환한 사례들
전통을 ‘지키는 것’에서 ‘재해석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은, 현대 로컬 콘텐츠 제작의 핵심 전략입니다. 로컬에 축적된 문화유산과 생활양식은 단지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현대 콘텐츠의 감각적 재료로 번역될 수 있는 원천 언어입니다. 그리고 이 번역 과정은 단지 형식적 리메이크가 아니라, 깊은 문화적 이해와 기술적 감각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 안동은 ‘하회탈’이라는 고유한 전통 유산을 활용하여, 탈놀이를 모티브로 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전시와 함께 탈 캐릭터 기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탈을 쓰고 직접 움직이며 스토리텔링에 참여하는 인터랙션 방식을 택해, 전통의 체험적 확장성을 이끌어낸 것이죠.
또한 전라남도 담양에서는 전통 차문화를 현대화한 ‘이너센트티’ 브랜드가 단순한 차 판매를 넘어서, 티 세리머니를 공연처럼 큐레이션하고, 차를 마시는 시간 자체를 예술적 ‘기다림의 문화’로 재해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는 ‘속도’가 지배하는 현대 도시의 흐름을 거슬러, 로컬의 시간 감각을 콘텐츠로 전달합니다. 부산에서는 ‘민락시장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시장 상인들의 삶과 그들의 언어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웹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통 시장이라는 ‘일상적 공간’을 예술적 언어로 변환해 내는 프로젝트로, 로컬의 생활유산을 현대적 방식으로 가시화한 예입니다. 결국 전통의 재해석은 단지 과거를 끌어오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여기에서 전통이 어떻게 새롭게 말할 수 있는가를 묻는 창작적 질문이며, 로컬 콘텐츠가 감각적이면서도 사유 깊은 콘텐츠가 되기 위한 중요한 전략입니다.
4. 로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미학과 철학
지역이 가지는 차별성은 단순히 ‘지역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지역의 삶과 철학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구현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상품화가 아닌, 삶의 양식(Lifestyle)을 재구성하는 예술적 시도에 가깝습니다.
군산의 ‘모노맨션’은 제분소 창고를 개조한 공간 안에 로컬 재료를 활용한 가구, 커튼, 식기 등을 직접 디자인하여 ‘군산의 시간을 살아가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이 브랜드는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산업유산과 공간미학, 그리고 지역민의 태도를 연결하며, 지역 브랜딩의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속초의 ‘마크 앤 드로우’는 어업과 바닷가 풍경, 조개껍질 무늬 등을 그래픽 화한 일상 소품으로 해안 도시의 감성을 전달합니다. 또한 제주도의 ‘스튜디오 오라’는 제주 전통 농가에서 영감을 받은 가구와 패브릭을 제작하며, ‘제주의 거칠고 따뜻한 바람’을 제품 디테일 속에 구현합니다. 더불어 대전에서는 ‘공감식탁’ 프로젝트가 로컬 식재료를 재해석한 요리와 함께 식기, 테이블보까지 지역 공예가들과 협업해 ‘지역 식문화를 시각적으로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음식이 아닌 식사 자체를 하나의 감각적 경험으로 재정의하는 시도입니다.
이러한 로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브랜드’이기 이전에, 삶에 대한 태도를 예술적으로 설계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로컬을 새롭게 보고, 느끼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5. 지역 기반 창작 시스템: 생산자-기획자-소비자 간의 창의적 순환
이러한 지역을 기반으로한 제품들의 지속 가능성은 단지 좋은 상품이나 콘텐츠에 그치지 않고, 창작 생태계 구조 자체의 재설계에서 비롯됩니다. 즉, 지역의 장인(생산자), 디자이너·기획자(중간 창작자), 그리고 로컬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 사이의 순환 구조가 활발하게 작동할 때, 로컬 브랜딩은 진정한 창조산업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대표적 예로, 제주도 ‘스테이폴리오’는 숙소 공간을 중심으로 로컬 아티스트, 농부, 디자인 기획자가 협업하여 스토리텔링 기반의 콘텐츠를 생성하고, 그 경험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남 고흥에서는 감자 농가와 청년 디자이너들이 협업한 ‘고흥식탁 프로젝트’가 실현되었는데, 이는 지역 식재료의 문화적 가치를 브랜딩 하여 상품화한 매우 창의적인 모델입니다. 이러한 협업 구조는 지역문화 기반의 창작 인프라를 실현하고, 로컬이 지속 가능한 콘텐츠 생산지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핵심 조건이 됩니다.
6. 로컬 브랜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새로운 관점
로컬 브랜드는 단지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문화적 가치란, 그 지역의 시간, 환경, 인간의 삶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언어화하고 재구성했는가에서 비로소 태어납니다. 지금 우리는 ‘로컬’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새로운시선으로 본다면, 오늘날의 로컬 콘텐츠는 그 지역만의 ‘언어’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단지 예쁜 포장이나 독특한 소재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의 밀도, 감각의 무게, 그리고 삶의 내면성이 콘텐츠를 진정하게 만듭니다. 또한 로컬은 ‘주변부’로 인식되던 기존의 위계를 무너뜨리며, 미래의 문화중심지로 전환되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창작자들이 로컬을 미화하거나 이상화하지 않고, 그곳의 일상성과 균열마저도 예술로 번역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져야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제안하고 싶은 것은, 로컬 브랜딩을 경제적 키워드가 아니라 예술적 실천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로컬은 단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삶을 질문하고 재해석하는 하나의 창작적 현장입니다. 결국 로컬 브랜드는 ‘디자인된 상품’이 아닌, 의미를 기획한 세계입니다. 여러분도 로컬 콘텐츠를 소비할 때, 그 디자인 속에 숨겨진 시간의 결, 철학의 뉘앙스, 삶의 단어들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가 로컬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뀔 때, 콘텐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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