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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60년 전 선언된 '살아있는 도시'는 지금 어떤 의미인가?
1960년, 일본의 젊은 건축가들이 '메타볼리즘(Metabolism)'이라는 급진적인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건축과 도시를 정적인 구조물이 아닌 유기적으로 순환하고 성장하는 생명체로 보았습니다. '도시는 살아 있어야 한다'는 이들의 선언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도시를 모듈화 하고 필요에 따라 부속을 교체하거나 확장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설계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기쇼 구로카와, 구니오 마키, 후미히코 마키 등이 참여한 메타볼리즘 그룹은 도쿄만 리디자인 계획, 나 카긴 캡슐타워 등 혁신적 설계를 통해 이 개념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이 철학은 오늘날 기후위기, 도시과밀, 생태계 붕괴라는 현실 속에서 다시금 소환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메타볼리즘은 기술이 아닌 ‘사고방식’을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재생 가능성, 자율성, 변화 가능성을 전제로 한 도시 모델은 오늘날 지속가능성과 순환경제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으며, 이를 시각화하는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들과 융합되며 문화적 화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60년 전 미래를 상상한 그들의 눈을 다시 빌릴 필요가 있습니다.
2. 이론의 대담함과 현실의 벽: 메타볼리즘 건축의 한계와 도전
메타볼리즘은 전후 일본 사회의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태어난 급진적 건축 운동으로, 도시를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진화하고 순환하는 생명체로 바라본 철학적 선언이었습니다. 당시 젊은 건축가들이 ‘건축 그룹 메타볼리즘(Metabolist Group)’을 결성하며 발표한 선언문에는, 단순히 건축의 형식을 넘어 인간 존재, 시간성, 사회구조까지 포괄하는 통합적 비전이 담겨 있었습니다. 건축은 고정된 완성물이 아니라, 세포처럼 교체되고 성장하며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념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 철학은 대표적으로 '기쇼 쿠로카와(Kisho Kurokawa)'의 ‘나 카긴 캡슐타워(Nakagin Capsule Tower, 1972)’에서 구현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교체 가능한 캡슐 모듈을 통해 도시에 '재생' 개념을 심는 동시에, 개인 주거 공간의 자유와 다양성을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5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모듈이 교체되지 못했고, 2022년 구조적 한계와 재정 문제로 인해 철거되며 상징적 실패를 맞이했습니다. 메타볼리즘은 일본 내에서만 시도된 것이 아닙니다. '오사카 엑스포 1970'에서는 마키 후미히코의 ‘유니버설 일본관’, 이소자키 아라타의 공중 구조물들이 메가스트럭처 개념을 바탕으로 구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또한 대부분 임시 구조물에 그치며 실제 도시로 확장되지 못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영향을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건축가 '보그단 보그다노비치(Bogdan Bogdanović)'는 ‘유기적 기념비’를 통해, 공간이 죽은 형식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순환시키는 장소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메타볼리즘적 사고는 대부분 실현보다 이상에 머무르거나, 초기 유지비용과 사회적 합의 부족으로 지속성을 갖지 못했습니다. 결국 메타볼리즘은 “기술을 넘어선 상상력”으로 도시를 바라보았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정치적 구조는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너무 앞서 보았고, 그만큼 외롭고 불완전한 실험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3. 건축 담론에서 예술 담론으로: 메타볼리즘의 개념 확장
메타볼리즘은 물리적 건축 언어를 넘어 예술적 조형 언어로 확장되며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조형예술과 건축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작업들이 메타볼리즘적 사고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라카와 + 긴즈(Arakawa + Gins)'*는 ‘생명을 연장하는 건축’을 목표로 한 실험적 주거공간을 통해 인간 중심 사고를 비틀었습니다. 그들이 설계한 ‘리버싱 데스 하우스(Reversible Destiny Lofts)’는 평면이 없는 바닥, 의도적으로 불안정한 구조, 경사진 벽면을 통해 인간의 감각과 행동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삶의 방식을 재정의하려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살아있는 공간’이 되어가는 예술적 실험입니다. 또한 '토마스 사라세노(Tomás Saraceno)'의 작품 역시 메타볼리즘과 유사한 철학을 보여줍니다. 그의 ‘Cloud Cities’ 시리즈는 거대한 공기 부양형 모듈 구조를 통해 중력, 공기 흐름, 인간의 이동성을 시각화하며, 공간이 하나의 생명체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조형 구조는 기술과 예술의 중간지점에서 메타볼리즘의 순환성·모듈성·유기성을 다시 환기시키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또 다른 사례는 '프라이 오토(Frei Otto)'의 구조적 실험입니다. 그가 고안한 경량 막 구조물은 생물학에서 유래된 패턴과 힘의 분산 원리를 바탕으로, 공간이 스스로 형성되는 ‘성장’ 개념을 반영했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메타볼리즘이 추구했던 생체적 공간의 형태성과 닮아 있으며, 인간과 환경이 공진화하는 공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합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조형적 예술은 메타볼리즘의 언어를 빌려 기술, 재료, 사회적 개입까지 통합된 형태로 새로운 ‘살아있는 공간’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4. 예술 속의 생명 순환: 메타볼리즘 아트의 현대적 변용
예술은 지금 메타볼리즘의 정신을 생명 기반 인터랙티브 시스템으로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생태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작품은 공간이 고정된 조형물이 아니라 생물처럼 ‘반응하는 존재’로 재해석되도록 유도합니다. '알렉산드라 데이지 깜페르'의 ‘Pollinator Pathmaker’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다양한 꽃과 식물의 조합을 설계합니다. 이 정원은 인간의 미적 기준이 아닌 벌, 나비와 같은 수분 매개체의 필요를 반영하여 구성되며, 생물 다양성과 인간의 역할에 대한 성찰을 유도합니다.
시시 린(Sissel Tolaas)는 화학과 감각 사이의 연결을 시각·후각으로 시각화하며, ‘공기’와 ‘냄새’를 예술 매체로 활용해 공간의 생물학적 요소를 탐구합니다. 그녀의 프로젝트는 도시에 축적된 감정, 기후, 이동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감각적인 도시 지도를 제안합니다. 또한 제임스 브라이들(James Bridle)은 ‘Drone Aviary’를 통해 드론과 인공지능이 도시에 어떻게 침투하고 감시하며 존재를 재편하는지 탐구합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기술이 어떻게 자율적으로 진화하고 감시-감정의 경계를 넘나들며 메타 시스템을 형성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메타볼리즘의 근간인 ‘순환성’, ‘자율성’, ‘성장성’을 예술 언어로 재해석하며, 작품이 환경과 관객, 기술과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하는 구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술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체계’로서 관객과 세계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로 기능하게 됩니다.
5. 지속가능한 도시와 순환미학: 메타볼리즘의 현재 가치
오늘날의 도시 설계는 메타볼리즘이 제기했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단절된 공간이 아닌 연결된 생태계, 고정된 구조물이 아닌 유동하는 시스템, 소모가 아닌 재생이 가능한 자원 구조가 요구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메타볼리즘은 단지 건축 이념이 아니라 ‘도시철학’이자 ‘지속가능성의 미학’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대표 사례로는 '암스테르담의 ‘순환 도시 프로젝트(Circular Amsterdam)’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폐기물 제로를 목표로, 건축 자재의 재사용, 바이오 기반 연료, 로컬 생산-소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는 메타볼리즘이 꿈꿨던 ‘재조합 가능한 도시 유닛’과 일맥상통합니다. 건축 자재의 RFID 태깅 시스템을 통해 미래 재건축 시 재활용률을 높이고, 도시는 일종의 '모듈화 된 생명체'처럼 기능합니다. '프라이부르크(Freiburg)'는 독일 내 지속가능한 도시계획의 모델로, 건축물에 태양광 패널을 통합하고, 자동차보다 자전거와 도보 중심의 교통 체계를 설계하였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건축이 환경의 일부가 되는 전략을 통해, 메타볼리즘적 사고인 생태적 자율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세종시 ‘제로에너지 타운’ 및 부산 ‘에코델타 스마트시티’ 등에서 도시를 모듈화 하고 생태적 순환을 전제로 한 디자인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메타볼리즘의 핵심 개념인 '변화 가능한 구조', '도시의 세포화', '생태적 자율성'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지속가능한 도시와 예술의 접점에서 우리는 메타볼리즘의 철학을 단순히 과거 유산이 아닌, 미래를 열어가는 열쇠로 다시 바라볼 수 있습니다.
6. 실패로 끝난 이념인가, 앞서간 예술적 선언인가?
메타볼리즘은 실패한 건축 이론이 아니라, 시기상조였던 철학적 선언이었습니다. 그들이 꿈꾸었던 ‘교체 가능한 도시’, ‘성장하는 건축’은 20세기 후반의 기술력과 사회 시스템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웠지만, 오늘날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보틱스, 스마트 자재 기술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술의 진보가 그들의 철학을 현실로 되돌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메타볼리즘이 고정된 형태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하나의 결과가 아닌, 사고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이 이 철학을 받아들여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며 오늘날 ‘도시는 살아 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문화적·기술적 맥락에서 다시 질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메타볼리즘은 여전히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유산 위에서 새로운 도시, 새로운 예술을 설계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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